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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 여성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던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2026년 9월 2일(현지시간) 뉴욕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향년 92세. 반세기 넘게 여성 인권 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그의 삶을 되짚어봤습니다.
스타이넘 재단은 이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가 뉴욕시 자택에서 사랑하는 이들 곁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NBC 방송은 그를 "여성의 권리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그의 활동 덕분에 여성들이 남성의 서명 없이 신용카드를 신청할 수 있게 됐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됐으며,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임신중지 시술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누구인가
1934년 3월 25일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태어난 스타이넘은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니 루스는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신경쇠약을 앓았고, 병세가 깊어지며 정신질환 요양소를 오가야 했습니다. 순회 세일즈맨이었던 아버지는 가정에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주지 못했고, 결국 스타이넘이 열 살이던 1944년 부모는 이혼했습니다. 스타이넘은 훗날 "일자리를 유지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일하는 여성을 향한 사회적 적대감의 증거였다"고 회고하며, 이 경험이 훗날 여성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1956년 스미스여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에스콰이어와 보그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 1963년: 뉴욕의 플레이보이 클럽에 '바니걸'로 위장 취업해 클럽 내 노동 착취와 성차별 실태를 고발하는 기사를 잡지 '쇼'에 실으며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무명의 자유기고가였던 그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계기였습니다.
- 1968년: 낙태 허용을 촉구하던 급진 여성단체 '레드스타킹'과 접촉하며 본격적인 페미니즘을 경험하게 됩니다.
- 1969년: 뉴욕 워싱턴스퀘어의 한 교회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해, 임신중지를 선택했던 여성들이 직접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으며 페미니즘에 눈을 뜨는 결정적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같은 해 흑인 민권 운동 이후의 여성 해방을 다룬 글을 발표하며 여성주의 운동의 지도자이자 대변인으로서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 1971~1972년: 잡지 <뉴욕>에 기고하기 위해 여성해방 운동을 취재하던 중 페미니스트 전문 잡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미즈(Ms.) 창간을 준비합니다. '시스터즈', 여성인권 운동가 소저너 트루스의 이름을 딴 '소저너' 등이 잡지명 후보로 거론됐지만, 결혼 여부에 따라 여성을 '미스(Miss)'와 '미시즈(Mrs.)'로 구분하던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며 두 호칭을 합친 '미즈(Ms.)'가 최종적으로 선택됐습니다. 1972년 발간된 창간호는 단 8일 만에 30만 부가 완판되는 성과를 냈습니다. 다만 당시 ABC 방송 앵커였던 해리 리즈너는 미즈가 자극적이기만 할 뿐 5호도 못 넘길 것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페미니즘을 향한 사회적 냉소를 보여주는 일화로 남아 있습니다.
- 2005년: 제인 폰다, 로빈 모건과 함께 여성을 미디어에서 두드러지고 강력한 존재로 만들기 위한 **위민스 미디어 센터(Women's Media Center)**를 공동 설립했습니다.

여성의 재생산권 운동과 로 대 웨이드 판결
스타이넘의 활동 중에서도 특히 1970년대 여성의 재생산권을 보장받기 위한 운동은 그의 대표적인 행적으로 꼽힙니다. 그는 미즈 창간호에서부터 '우리는 임신중지를 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으며 이 이슈를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뒤인 1973년, 낙태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이 나오면서, 스타이넘을 비롯한 당대 여성운동가들의 목소리가 실질적인 법적 변화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인물
당시 언론은 스타이넘을 두고 종종 혼란스러워했다고 전해집니다. 페미니스트는 각진 외모에 억센 인상이어야 한다는 당대의 고정관념과 달리, 미니스커트에 긴 생머리를 한 스타이넘의 이미지는 기존 여성운동가의 전형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는 페미니스트도 자신을 꾸밀 수 있고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린 초기 페미니스트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반세기를 관통한 활동 영역
스타이넘은 특정 이슈에 국한되지 않고, 페미니즘과 연관된 폭넓은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 가정 폭력 문제
- 직장 내 성 불평등
- 여성의 재생산권
- 성소수자(LGBTQ) 인권
- 여성의 정치(의회) 진출 운동
- 인종과 계층을 넘어선 여성 간 연대
이처럼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활동해온 그는, 단순한 한 시대의 운동가를 넘어 미국 여성운동사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 존재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말년까지 이어진 재조명
지난해에는 스타이넘이 공동 창간한 잡지 '미즈'의 여정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미즈에게: 잡지 혁명(Dear Ms.: A Revolution in Print)'이 공개되며, 90대에 접어든 그의 삶과 발자취가 다시 한번 대중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플레이보이 클럽 잠입 취재로 사회에 첫 파장을 일으킨 20대 저널리스트에서,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의 창간자로, 그리고 반세기 넘게 여성 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살아온 글로리아 스타이넘. 그가 남긴 발자취는 여성들의 일상적인 권리 하나하나에 깊이 새겨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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